오늘의 이슈 - 전두환과 박신혜
오늘의 이슈는 전두환과 박신혜이다.
첫째로 전두환의 사망이다.
경남 합천군 율곡면에서 태어난 전두환은 대구공고를 졸업하고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55년 육사 졸업 후 육군 제25보병사단에서 소대장으로 첫 복무를 시작했다. 1959년 미국 특수전 파견 교육 장교로 선발됐고, 이어 제1공수특전단 본부에서 군생활을 이어갔다. 이 해 전두환은 아내 이순자 씨와 결혼했다.
1961년 5·16 쿠데타 때 서울대 학군단(ROTC) 교관으로 일했던 전두환은 육사 후배들을 설득해 군부 혁명 지지 시가행진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국가재건 최고회의 비서관 자리에 올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육군본부 인사참모, 제1공수특전단 부단장 등을 지냈다. 1969년엔 육사 동기 중 최초로 대령에 진급해 1970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1974년 육사 11기 중 가장 먼저 준장을 달았다. 이후 대통령 경호실 작전차장보, 제1보병사단 사단장 등 요직을 거쳤다.
1979년 국군 보안사령관이 된 전두환은 육사11기가 주축이 돼 비밀리에 결성한 '하나회'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영향력을 키웠다. 그러다 10·26 사태 이후 정국이 혼란한 틈을 타 정권을 거머쥐었다.
10·26 사태로 박 전 대통령이 암살당한 뒤 전두환은 국군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을 주축으로 한 하나회는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를 연행하고 군을 장악했다.
1980년 5월17일에는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 시행했다. 당시 학생, 정치인, 재야인사 등 2699명을 구금했다. 신군부의 전횡에 항거하며 광주에선 5·18 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이를 유혈 진압한 사람은 전두환이다. 5·18 민주유공자 유족회가 2005년 집계한 통계를 보면 5·18 사망자는 모두 606명이다.
1980년 전두환은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취임 후 전두환은 정당해산령을 내리고 1980년 10월 27일 '7년 단임 대통령제'가 담긴 새 헌법을 공포했다. 1981년 민주정의당에 입당한 그는 새 헌법에 따라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85년 12대 총선을 계기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가 터져 나왔다. 여기에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불거지면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럼에도 전두환은 그 해 4월,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며 '체육관 선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4·13 호헌조치'는 결국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적 열망 속에 5공화국의 몰락을 이끄는 시초가 됐다. 전국적인 시위기 아이 졌고 결국 6월 29일 전두환에 이어 차기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는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는 '6·29 선언'을 발표했다.
노태우 정권 이후 5공화국 비리와 5·18 민주화운동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끓었다. 결국 전두환은 1988년 11월 23일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한 뒤 부인 이순자 씨와 내설악 백담사로 향했다.
육사 11기 동기이자 친구인 노태우(왼쪽)와 나란히 법정에 선 전두환. 사진=연합뉴스
'사형→무기징역→사면복권'과 전재산 29만원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전두환과 노태우를 전격 구속했다. 죄목은 반란수괴, 반란모의 참여, 반란 중요 임무 종사, 불법 진퇴, 지휘관 계엄지역 수소이탈, 상관살해, 상관살해미수, 초병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 참여, 내란 중요 임무 종사자, 내란목적 살인,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이다.
전두환은 반발했다. 서울 연희동 자택 앞 골목에서 이른바 '골목 성명'을 발표한 뒤 현충원을 찾아 참배하고 고향인 합천으로 내려갔다.
1심에서 전두환은 반란 수괴와 부패 혐의로 거액의 추징금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검찰은 상고했지만 1997년 4월 대법원은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한 서울고법의 판결을 확정했다.
제15대 대통령 선거 이틀 뒤인 1997년 12월 20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두환을 사면 복권했다. 다만 추징금은 전부 내야 했다. 올해 기준 전두환이 미납한 추징금은 956억 원이다. 추징시효는 2013년 10월로 이미 7년 기한을 넘겼다.
출소 후 연희동 자택에서 경호를 받으러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가던 전두환은 2003년 추징금 환수를 위해 열린 재판에서 자신의 재산이 29만 1000원이라고 밝혀 공분을 사기도 했다.
전두환은 23일 오전 8시 40분쯤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투병 끝에 숨을 거뒀다.
두 번째 이슈는 박신혜의 결혼 소식이다.

박신혜 소속사 솔트 엔터테인먼트는 23일 “박신혜 배우와 최태준 배우, 두 사람이 행복한 백년가약을 맺습니다”라고 밝혔다. 결혼식은 양가 가족들을 배려해 비공개로 진행된다.
이어 “지난 2017년부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사이로 만남을 이어 오던 두 사람이 2022년 1월 22일 서울 모처에서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소속사는 박신혜의 임신 소식도 전했다. 소속사는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 가운데 소중한 생명이 찾아왔습니다. 아직은 안정이 필요한 초기인 만큼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 상황인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다.
박신혜는 팬카페를 통해 이 같은 소식을 직접 전했다. 박신혜는 “제가 오랜 시간 동안 교제해 온 친구와 결혼을 하려고 한다”며 “인간 박신혜의 부족한 모습들까지도 감싸 줬던 사람과 부부로서의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너무 기다리시지 않게 하루빨리 멋진 배우의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라며 이만 인사드리겠다”라고 했다.
중앙대 연극학과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2017년 연인으로 발전, 2018년부터 공개 열애 중이다. 1990년생 박신혜가 최태준보다 1살 연상이다.